과학 기술 혁명이 가져올 세계관, 윤리관의 변화

그동안 연재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가지 과학기술의 흐름을 소개하였다.  새로 다가오는 과학기술에 대한 면면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되도록 자세히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쳔들이 좀더 관심을 갖는 바는 과연 이 4차 산업혁명에서의 과학기술혁명이 크리스쳔 신앙과 교회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세계관을 말할때 이 과학기술 혁명에 담긴 가치관을 빼 놓고 얘기한다면 허구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은  의식주뿐만이 아니라 언어, 문화, 경제, 예술, 정신 세계까지 영향을 주고 기독교 세계관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 기술 시대가 주는 가치관을 엄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의 이성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이성이다. 그들의 이성은 데이터로 보여 주지 않으면 믿지않는 이성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과학적 합리적 사고 방식이 지배하고 있다.  17-18세기의 흐름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왜냐하면 과학 기술이 실제로 뭔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바둑 챔피언이 되고 인간 게놈이 완성되고  유전자 편집 아이가 태어나고 복제 동물이 태어나고 뇌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등등 신비롭고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 둘 씩 실현되기 때문이다. 과학자, IT Genius들의 말이 비중있게 취급되며 그 원천 기술들을 응용하여 성공한 기업가의 말에 열광한다. 일반 사람들의 롤모델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니 수백만개의 창업회사들에서 젊은 인재들이 내일의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것 아니겠는가. 일반 사람들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이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사상과 세계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로, 맘몬과 결탁한 극도의 편리주의이다.

옛날의 과학자들은 철학자이면서도 과학자인 경우가 많다. 철학은 직/간접적으로 성경적 세계관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자들은 그런 철학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동안 불가능이라고 여겨왔던  영역이라면 과감히 도전한다. 그것이 현대의 자본주의, 맘몬과 결탁되어 이 도전이 엄청난 부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세계관이 들어갈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뒷전이다. 편리주의와 그들 나름의 박애주의가 결탁되어 있다. 디자이너 베이비에서 보듯이 출발은 기형아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에고 중심주의’에 젖은 세대들은 결국 이기적, 인간 중심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극심한 국가간 경쟁은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결국 새로운 과학 기술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철학과 신학은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세계를 이끌고 있는 거대 IT, 미디어 기업들은 인간들의 편리함에 최대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편리한 시스템이 나왔을때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둘째로, 자연주의와 과학주의에 근거한 신이신론이다.

인체와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일 수록 절대자를 인정한다.  그 신비함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DNA 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정보 장치라고 한다. 한 세포안에 있는 DNA 정보가 책으로 1000권 정도의 분량이라 한다. 그런데 인체의 세포수는 100조개 이상이라 한다.  이 어마어마한 DNA가 질서 정연하게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한 미국 국립 보건원 원장 프란시스 콜린스는 ‘DNA 는 하나님이 생물들을 창조한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언어’와같다고 고백하였다.  DNA 의 존재와 작용이 진화론자가 주장하듯이 ‘우연’ 으로 형성될 가능성은  제로이다.  많은 과학자들도 이것을 알기에 ‘우주의 지적 설계론’을 인정한다.

몇 년 전에 Pew Research Center 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 대상 과학자중 33%가 하나님을 믿는다 했고, 18%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우주적 영과 힘이 있다는 것은 믿는다 했고, 41%는 아무것도 안믿는다 했고, 7%는 모르겠다고 했다. 데이터와 증거를 신봉하는 이성주의 집단인 과학자들의 51%가 Supernatural 한 현상을 믿었다.

콜린스는 구원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크리스쳔이지만 대부분의 다른 과학자들은  ‘우주의 지적 설계론’ 은 동의하지만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새로운 이신론(신이신론)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과학이라는 것은 자연주의 법칙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자꾸 간섭되어 그 현상이 변칙적으로 되어 진다면 성립되어 질 수 없기에 더욱 그런 경향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신이신론’이라 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신론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한번 하시고 그 다음은 간섭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으로 멀리 보내버렸다. 그리고 현실의 영역과 신비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자들은 그 영역을 나눈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신비 현상들을 자꾸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증명하려 한다.  이들은 신비로운 현상들이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있다는 가정하에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연구한다. 가장 좋은 예가 ‘영혼 이탈 현상’ 과 죽음을 경험했다 살아 온 사람들의 ‘터널 통과한 느낌, 그 끝에 환한 새로운 세계를 맛본 경험’을 실험한 것이다.

독일 과학자 토마스 렘퍼트는 42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혈압 현상으로 기절하게 했다가 다시 깨게 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60%가 시각적인 환각 증세를 느꼈고 47%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것 같다고 말하였다 했고 20%가 초자연적인 누군가를 만났다고 했고  17%가  환한 불빛을 보았다고 했다.  8%는 터널을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기절된 상태가 이와 같은 영혼 이탈 현상을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서 체험했다는 위의 현상들이 신비로운 영적 세계가 아니라 저혈압 상태에서 관측될 수 있는 뇌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뇌현상을 연구한다. 사람의 마음 상태를 육체와 분리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그들의 궁극적인 연구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뇌와 분리해서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함이고 더 궁극적인 목적은 뇌의 기억 세포와 분리되어 컴퓨터에 저장된 세포가 서로 커뮤티케이션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다른 사람의 지식이, 예를 들어 불어를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뇌세포가 내 뇌에 전달되어 아무 노력 없이도 나는 불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지적인 Supreme은 인정하지만 ‘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하나님’은 인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는 원죄론을 믿을 수가 없다. 다원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세째로, 극도의 자기 중심적인 인본주의이다.  

다원화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리없이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사상이 인권(휴머니즘)이다. 인권의 명분을 얻으면 과학, 이성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유전자를 연구할 때도 인간을 위하여 기형아에 대한  탄생을 막기 위함이라 하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인공 지능도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함이라 하면 명분을 확실히 얻는다. 화성에 갈 프로젝트도 멸망할 지도 모르는 지구로부터 탈출구를 찾기 위함이다고 하면 힘을 받는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의 인권, 여자의 인권, 억압받는 자들의 인권을 강조하였다.

크리스쳔들도 ‘휴머니즘’ 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교회에서도 ‘사람 위주’의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진다. 찬양이 찬송가보다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복음 성가로 채워진다. 크리스쳔들은 휴머니즘 중에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거부해야 하는가? 예수님도 ‘안식일에 사람을 구하는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사람을 위하여 천지 창조하시고 사람을 위하여 병자를 고치시고 사람을 위하여 먹이시고 심지어 사람을 위하여 죽기까지 하셨다.  예수님의 ‘사람을 위함’ 과 휴머니즘 사이의 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신론이 휴머니즘을 만나 성경적 세계관은 본질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박해도 심해진다. 우리는 휴머니즘의 본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경계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적어 본다.

  1. 휴머니즘은 이성의 철학이자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의 철학이다. 그러므로 휴머니스트들은 세상의 지식을 찾는 노력에 있어서 임의적 신앙, 권위, 계시, 의식의 변형(성령) 같은 것을 배척한다.
  2. 휴머니즘은 연민의 철학이다.  개인이나 사회에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들, 또 인간의 문제등에 대해서 답변하는 것이지 신학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3. 휴머니즘은 ‘여기에 지금있는’ 철학이다. 인간 현실 생활에 대한 콘텍스트이지 죽음 후의 문제에 대한 약속이 아닌 것이다.
  4. 휴머니즘은 과학과 잘 조화된다. 오랫동안 진화된 자연적 우주 공간 속에 사는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지 증거도 없는 ‘영혼’에 대한 인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보면 휴머니스트들은 결코 성경적 세계관의 아군이 아니다. 이신론과 아주 잘 어울린다. 이신론에서 출발한 사상은 이성주의를 넘어 인본주의, 과학주의와 어울려져 대세를 형성해 가고 있다.

아인슈타인을 잇는 스트링 이론의 물리학자이자 미래학자이며 ‘Future of the Mind ’ 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미래 학자인 미치오 카쿠는 신이신론자이다. 미치오 카쿠는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이며 Science Fantastic 이라는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기도 한다.  이 시대의 16명의 발명왕 중 하나로 뽑힌 레이 커즈와일은 진화론자이자 휴머니스트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라는 베스트 셀러 저자이기도 하고 구글의 이사이며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해 연구하는 대학, 싱규레리티 대학이 창립자이기도 한다.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미래예측과 관련하여 제일 많이 인용되는 사람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유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불교도로서 세상을 마감했다. 세상의 불공평한 모습, 크리스쳔들의 위선적 모습에 대한 반감으로 하나님 배경을 가진 유대인이지만 차라리 자신의 수양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불교도가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인본주의적인 색채를 띤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사람을 향한 애정은 어쨌든 스마트 폰 시대를 열게 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 시대 불굴의 도전자,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관심사는  이 세상 그 자체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원천 기술들을 전부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응용할 수 있게 열어 놓았다.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인류는 화성으로 이전해야 한다며 얼마전 ‘Space X의 민간 화성 프로젝트’를 선언하였다. 2022년에 인간이 탑승한 첫 화성 위성을 민간 주도하에 발사한다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세상 밖에 있질 않다.

 과학 기술 혁명으로 인하여 실생활 뿐만이 아니라 세계관이 바뀌고 있다. 그로 인해서 성경적 세계관이 메가톤급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대처해야 할지 준비해야 한다.  호세아 4:6 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

작금의 신학교 교육과 신학생들의 수준과 상태를 보면 더욱 암담하다. 신학교 교육은 1900년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신학생들은 지적 공부를 하지 않는다. 경험도 단순하다. 너무 쉽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날고 뛰는 세상의 지식을 가진 교인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는가?

전도서 9장 17절에는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고 하였다.  지금같은 개교회 주의로 계속되며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다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신이신론을 믿는 과학 기술 신봉자들, 또 그들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 진화론을 과학으로 알고 생각하는 사람들, 편리함과 맘모니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그들에게 이 과학 기술 시대에 맞는 성경적 세계관이 어떻게 스며들게 해야 할지를 진정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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