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차 산업혁명과 교회 미래

초연결성, 초지능성, 예측 가능성. 4차 산업혁명의 성격을 집약한 단어들이다. 물리학과 생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기반으로 한 이 혁명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다. 교회는 이 격변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4차 산업혁명과 교회의 상관관계를 묻는 이 질문에 누군가는 아덴과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외친 2세기 북아프리카 교부 터툴리안과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원론적 입장은 교회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할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급격한 변화를 교회라고 비켜갈 수 없다. 초연결과 초지능 중심의 미래 사회에서 교회의 게토화는 이전 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교회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처럼 인간은 자신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로봇을 창조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이 세운 기록들을 하나씩 깨고 있다. 1997년 인공지능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2011년 인공지능 왓슨은 유명 퀴즈쇼 제퍼디에서 역대 최강자 챔피언들을 압도했다. 급기야 인공지능 알파고가 한국과 중국의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과 커제를 차례로 이겼다. 왓슨은 1초에 80조 번에 이르는 연산 능력을 갖췄고 1초에 책 100만 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의 적용 분야는 무인 자동차, 생명공학, 의료, 법률, 금융, 교육은 물론 범죄수사와 요리까지 확대되어 상용화될 전망이다. 이런 깊고 광폭한 변화가 불과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1차부터 3차 산업혁명까지 200여 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4차 산업혁명은 엄청난 속도로 미래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는 사물인터넷을 통한 인간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연결은 물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통한 현실과 사이버 공간의 융합으로 구축되는 초연결성이 낳은 급변이고 격변이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간은 호모커넥투스(Homo Connectus).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인간형 호모커넥투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이러한 초연결사회는 컴퓨터의 기하급수적 발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컴퓨터 여명기인 1930년대에서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하는 1970년까지 40년이 걸렸고, 20년 후인 1990년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들을 통해 정보 공유를 가능케 한 월드 와이드 웹(www) 개발이 이루어졌다. 웹 개발은 지구의 신경망과 뇌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한 것이었다. 10년 후인 2000년대 후반에 PC와 같은 기능에 무선 전화 통신 가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듈이 추가된 스마트폰이 출시되었다. 이제 누구나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실시간 사용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빅데이터 산출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것을 처리하고 산출하는 인공지능이 인간 뇌 구조를 토대로 2010년대에 개발되었다. 매단계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랍게도 절반씩 단축되었다. 컴퓨터 계산력이 2년 만에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과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컴퓨터 수의 2승으로 그 가치가 증가한다는 메트칼프의 법칙은 범용 인공지능의 실현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구글의 기술고문이자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특이점(singularity) 시대의 도래를 주장한다. 특이점은 인공지능 발전이 가속화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예측불가다.

인간생활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지 아니면 희망이 될지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전기자동차 제조사 테슬라 CEO 머스크는 인공지능 개발을 악마를 부르는 주술에 비유한다. 그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와 스티븐 호킹도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인류에 장차 위협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변화를 진지하게 숙고하고 준비하는 것이 교회의 시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자칫 과학만능주의로 흘러갈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세계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두는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한다.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언한 경제학자다. 그는 이 혁명의 핵심이 휴머니즘이라 주장한다. 인간 본질과 사고방식, 인간관계를 크게 바꾸어 놓을 이러한 인간중심적 혁명이 가져올 여러 가지 결과들을 예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해보자. 만약 인간이 로봇 안에서 영생을 얻는다면 기독교 교리의 근간인 부활 신앙은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휴먼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면 신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가? 섹스 로봇과 가상현실 포르노가 상용화되면 전통적 결혼제도와 가정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 인공지능 상사로부터 업무 명령을 하달 받는 부하 인간의 가치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인 휴머니즘 시대를 지나 이제 포스트휴머니즘과 그것의 한 분파인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고 확장하려는 사상이다. 나아가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 미래사회는 인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지능력을 갖춘 유기 생명체 및 기계 생명체의 공존을 지향한다. 이는 기계의 인간화와 인간의 기계화가 가능함을 뜻한다. 포스트휴먼적 이미지를 가장 잘 재현하는 것이 사이보그(cyborg). 영화에서 보듯 기계 의수나 의족을 팔과 다리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고 신경과 회로를 연결하기 시작한다면 어디까지가 기계고 어디까지가 인체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규정해 왔던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신체성 없는 주체의 등장과 혼종 인간과 이러한 현상과 결부된 다양한 성 정체성 출현으로 근대적 휴머니즘을 탈피한 새로운 인간 이해가 가능해진다.

초지능성, 초연결성, 생명 지속성/영속성은 과거 신적 영역이었다. 이제 인간이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딥러닝, 인공지능을 이용해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자 추구하는 목표인 인간중심주의는 기독교 신관과 결국 충돌하게 될 것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 생명의 지속/영속이 가능하게 되면 미래사회에 종교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기술발전으로 어디서나 일하고 거주할 수 있게 되면 비유동적(stationary)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사이버 교회와 홀로그램 설교자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초연결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정체성과 교회 공동체성은 과연 보존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변화 추구와 개인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극대화하는 미래사회 속에서 기독교 진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 4차 산업혁명을 추동케 한 과학기술은 현대판 바벨탑인가 아니면 인류가 직면한 과제의 궁극적 해결책인가?

앞으로 10년은 교회 존립을 가르는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질문이 사라진 교회는 답도 없고 미래를 생각지 않는 교회는 내일도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회는 복음적 가치와 공동체성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변치 않는 진리를 4차 산업혁명이 추동하는 심각한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선교적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슈밥의 말을 인용하면서 갈무리한다. “인류사적 측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처럼 엄청난 축복과 잠재적 재앙을 동시에 몰고 온 적이 일찍이 없었다.”

이제 미증유의 도전에 직면한 교회는 이 혼란스런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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